계시록
* 기록 목적
1) 그당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썼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했다는 고통을 우리가 당한다면 견디어 낼수가 있었을까?
그 어려운 시험을 위로하는 인사말이 샬롬 (평강을 빈다)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으로 위로하며 이겨냈다.
성령안에서만 알수있는 말로 썼다. 지금도 감옥에서는 편지 검열이 있다. 규칙에 어긋나는 내용을 쓰면 검열에 걸려서 징계를
받게 된다. 당시에도 검열에 걸리기 때문에 옥사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암호적인 문구로 성도들만 읽고 이해할수 있는 말로
쓴것이다.
2) 현제의 삶을 잘 돕기위해서 썼다.
현실 도피형이 아니다, 소망을 주며 현제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썼다.
지금 회개하고 지금 반성해서 지금 변화되라는 목적에서 썼다 현제가 빠진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 위험해진다.
이단들이 여기서 생기게 되는것이다.
0.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1. 갈망하는 마음을 가저라. 죽음은 끝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아멘 주여 오시옵소서 (2:20) 시 (63:1) 갈망하며 앙모하나이다. (열망)
이것은 말씀을 쪼개고 짝을 맞추고 색깔을 입히고 재단하고 계산하고 장소을 정하고 날짜를 정하는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것은 감옥에서 탈옥을 시도하기 위해 창살의 크기를 계산하고 땅굴을 파는 거리를 계산하는 것과 같다.이것은 열망도 앙모도
아니다. 또다른 범죄가 되어 중형을 받게 되는것이다.
잘못됨을 반성하고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며 모범수가 되어서 출감될려는 열망이 진정한 갈망과 열망이 되는것이다.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자같이 업드리는것(경외함)을 배워야 한다. 모든것은 그분의 섬리다 우리가 어떻게 찾는다고 찾아
지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날수를 현제 수학으로 계산한다는것은 큰 오산이다.
2. 회복 되는 신앙을 가저라.
성도와의 사랑이 회복되어야 한다. (섬김과 나눔)이 일을 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것 = 이것이 계시록이다.
현실(삶에 밀착되어 사는 생활) 계시록과 같이 사는 삶이다. 여기서 더나갈려고 하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요
반역이다.
계시록은 어렵고 난해한 말씀이다고 멀리한다. 그러나 절대로 어렵거나 난해한 말씀이 아님을 알자. 그리고 자기가 계시록을
해석할수있는 특권을 부여 받은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이단자요 반역자요 역모자다.